오늘 목록에 이런 제목이 있었다. “AI 모델들의 월드컵 베팅 결과는… 제미나이 1위·클로드 최하위.”

기사에는 숫자가 또렷했다. 최종 자산이 얼마고, 수익률이 몇 퍼센트고, 순위가 1위부터 7위까지. 그리고 친절한 해석까지 붙어 있었다. 클로드의 강력한 윤리 가이드라인과 정렬(alignment)이 공격적 베팅을 제약해 최하위가 됐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걸린 건 숫자가 틀렸을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숫자가 있는데 표본이 없었다.

몇 경기였나? 모델당 몇 번 걸었나? 실제 돈인가 시뮬레이션인가? 기사 전문을 다 읽어도 하나도 안 나온다. 그래서 원 사이트를 열었다.

왜 표본부터 찾았나?

내가 데이터를 볼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순위표는 언제나 순위표처럼 보인다. 1등과 꼴찌가 있고 그 사이가 채워져 있으면 뭔가 갈렸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7개를 줄 세우면 표본이 몇 개든 반드시 1등과 꼴찌가 나온다.

동전 7개를 각각 10번씩 던져도 앞면이 제일 많이 나온 동전과 제일 적게 나온 동전이 생긴다. 그 순위표를 놓고 “1번 동전이 앞면을 잘 낸다”고 쓰면 안 되는 것과 같다.

flowchart TD
    A["📰 순위표를 봤다"] --> B{"표본 크기가<br/>적혀 있는가?"}
    B -->|"없다"| C["🔍 원 출처로 간다"]
    B -->|"있다"| D["유의성 검정으로"]
    C --> E{"원문에도<br/>없는가?"}
    E -->|"있다"| D
    E -->|"없다"| F["🛠️ 직접 구한다<br/>(API·원자료)"]
    F --> D
    D --> G{"순위 차이가<br/>우연 범위인가?"}
    G -->|"우연 범위"| H["❌ '순위'라고 쓰면 안 됨"]
    G -->|"우연 아님"| I["✅ 차이를 서술 가능"]

    classDef q fill:#fff4e0,stroke:#e08a00,color:#7a4a00
    classDef no fill:#fdeaea,stroke:#c0392b,color:#7b241c
    classDef yes fill:#e6f7ec,stroke:#1a7f45,color:#0f4d29
    class B,E,G q
    class H no
    class I yes

사이트에서 데이터를 어떻게 받았나?

원 사이트는 자바스크립트로 그려지는 페이지라 화면만 봐서는 원자료가 안 잡힌다. 그런데 이런 사이트는 대개 뒤에서 자체 API를 호출한다. 그 엔드포인트를 찾으면 화면에 표시된 것보다 훨씬 많은 걸 받을 수 있다.

두 개를 찾았다. 하나는 리더보드, 하나는 경기 목록이다. 받아보니 기사에 없던 숫자들이 통째로 들어 있었다.

  • 총 104경기 (2026-06-11 ~ 07-19, 월드컵 전 경기)
  • 총 1,376베팅
  • 모델별 시드 뱅크롤 각 10,000 USDC

기사에는 이 셋 중 아무것도 없다. 독자가 유의성을 판단할 근거가 원천 차단돼 있었던 셈이다.

전체 순위표는 어떻게 생겼나?

받은 데이터를 정리하면 이렇다. 기사에 없던 승·패·베팅수·승률 컬럼을 붙였다.

순위모델최종 자산ROI베팅수승률
1Gemini 3.5 Flash15,526.36+55.26%1318121261.8%
2Mistral Medium15,513.42+55.13%1379723458.5%
3GPT-5.514,766.06+47.66%11010321351.6%
4DeepSeek V413,073.56+30.74%1209021057.1%
5Grok 4.311,587.53+15.88%644010461.5%
6Kimi K2.69,742.11−2.58%946315759.9%
7Claude Opus 4.84,968.83−50.31%13910124057.9%

이 표를 만들자마자 이상한 게 세 군데 보였다.

첫째, ROI 3위가 승률은 꼴찌다. GPT-5.5는 승률 51.6%로 7개 중 가장 낮은데 +47.66%를 벌어 3위에 올랐다.

둘째, 베팅 횟수가 모델마다 2배 넘게 차이 난다. Grok은 104번, 클로드는 240번 걸었다. 노출량이 이렇게 다른데 수익률을 나란히 놓는 건 비교가 성립하지 않는다.

셋째가 결정적이다. 최하위 클로드의 승수(139)가 전 모델 중 1위다. 승률도 57.9%로 +47.66%를 번 GPT-5.5(51.6%)보다 높다.

순위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나?

세 가지로 확인했다.

① 승률은 7개 모델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각 모델의 승·패를 교차표로 놓고 카이제곱 검정을 돌렸다.

χ² = 5.64,  df = 6,  p = 0.465
기각역 (α=.05) = 12.59

p값이 0.47이다. 승률 범위는 51.6%~61.8%로 통합 58.0%인데, 이 정도 편차는 모든 모델의 실력이 똑같아도 얼마든지 나온다. 어느 모델이 예측을 더 잘한다는 증거가 데이터에 없다.

② 승률과 수익률의 상관이 사실상 0이다

Spearman(승률, ROI) = +0.179

이 숫자가 뜻하는 바가 이 글의 핵심이다. 이 순위표는 예측 정확도 순위가 아니다. 잘 맞힌 순서와 돈 번 순서가 거의 무관하다. 순위를 만든 건 베팅 사이즈와 배당 선택이지 예측력이 아니다.

③ ROI 격차 자체가 잡음 범위다

정산된 베팅의 건당 손익 표준편차를 실측하니 약 474였다. 이 값으로 t검정을 하면 이렇게 된다.

가정 SDt(Gemini)t(Claude)t(Gemini−Claude)
150 (극도로 보수적)2.53−2.173.33
2501.52−1.302.00
474 (실측값)0.80−0.691.05
6000.63−0.540.83

7개 모델의 쌍별 비교는 21가지다. 다중비교를 보정하면 |t| > 2.94가 필요한데, 실측 표준편차에서 1위와 꼴찌의 t는 1.05다. 근처에도 못 간다.

한 번 더 확인하려고 몬테카를로도 돌렸다. 모든 모델의 실력 우위가 정확히 0이라고 가정하고 2만 번 시뮬레이션했다.

최상위–최하위 ROI 격차 중앙값 = 174%p  (95분위 278%p)
P(격차 ≥ 관측된 105.6%p) = 0.914

읽는 방법이 중요하다. 실력 차이가 전혀 없을 때 기대되는 1위–꼴찌 격차의 중앙값이 174%p인데, 실제 관측된 격차는 105.6%p다. 즉 관측된 격차는 순전한 우연이 만들어내는 격차보다 오히려 작다.

그럼 “클로드가 윤리 때문에 졌다”는 설명은?

기사가 붙인 해석은 이거였다. 클로드의 강력한 윤리 가이드라인과 정렬이 공격적 베팅을 제약해서 최하위가 됐다는 것.

데이터가 이걸 정면으로 부정한다.

flowchart LR
    subgraph CLAIM["📰 기사의 설명"]
        C1["윤리 가이드라인이<br/>공격적 베팅을 제약"] --> C2["소극적으로 베팅"] --> C3["그래서 최하위"]
    end

    subgraph DATA["📊 실제 데이터"]
        D1["베팅 240건<br/>= 7개 중 최다<br/>(최소 Grok의 2.3배)"]
        D2["승수 139<br/>= 7개 중 1위"]
        D3["승률 57.9%<br/>= 3위 GPT-5.5(51.6%)보다 높음"]
    end

    CLAIM -.->|"반박됨"| DATA

    classDef claim fill:#fdeaea,stroke:#c0392b,color:#7b241c
    classDef data fill:#e6f7ec,stroke:#1a7f45,color:#0f4d29
    class C1,C2,C3 claim
    class D1,D2,D3 data

클로드는 가장 많이 걸었고, 가장 많이 맞혔는데, 돈을 잃었다. 이건 “제약돼서 소극적이었다”의 정반대 현상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예측 실패가 아니라 배당 대비 스테이크 배분 문제에 가깝다. 많이 맞혀도 낮은 배당에 크게 걸고 높은 배당에 작게 걸면 잃는다.

그리고 여기에 복리 구조가 얹힌다. 스테이크가 현재 자산에 비례해 커지는 방식이면 초반의 운이 후반으로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진다. 최종 자산 격차는 실력 격차가 아니라 경로 의존의 결과다.

우승자가 누구인지도 힌트다

이 실험이 정말 추론 능력을 쟀다면, 우승자 명단이 이상하다.

1위가 Gemini 3.5 Flash다. Flash는 경량·저가 티어다. 2위는 Mistral Medium이다. 프런티어 모델들이 경량 모델에 밀렸다.

이걸 “경량 모델이 예측을 더 잘한다”로 읽으면 안 된다. 반대다. 경량 모델이 프런티어 모델을 이겼다는 사실 자체가 이 순위표가 실력을 재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은 어디 갔나?

받은 데이터에서 확인한 또 하나. 사이트가 직접 이렇게 고지하고 있었다.

“이 화면은 정보 제공만을 위한 실험적 시뮬레이션입니다. 금융 조언, 베팅 조언 또는 베팅이나 기타 행동을 권유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최종 자산이 USDC 단위로 적혀 있어서 실제 자금처럼 읽히지만 페이퍼 트레이딩이다. 기사에는 이 단서가 없다.

이 실험을 만든 회사는 누구인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 실험 주체는 프랑스 핀테크로, 자연어로 자동매매 전략을 만드는 앱이 주력 제품이다. 그리고 몇 달 전 한 거래소와 “AI 트레이딩 아레나” 형태의 카피트레이딩을 함께 낸 이력이 있다.

“AI가 베팅·트레이딩으로 돈을 번다”는 서사에 직접적인 상업적 이익이 있는 곳이다. 실제로 결과도 7개 중 5개가 플러스로 끝났다.

이게 곧 조작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해관계는 고지 대상이고, 기사는 이 회사를 그냥 “AI 스타트업”으로만 소개했다.

정리하면 무엇이 문제였나

기사에 있던 것데이터에 있던 것
순위 17위, ROI +55%−50%표본 104경기·1,376베팅 (기사에 없음)
“제미나이 1위, 클로드 최하위”승률 차이 χ²=5.64, p=0.47 — 유의하지 않음
”윤리 제약으로 소극적이어서 최하위”클로드가 베팅 최다(240)·승수 1위(139)
최종 자산 15,526 USDC 등페이퍼 트레이딩 시뮬레이션 (사이트가 직접 고지)
“AI 스타트업 실험”자동매매 앱을 파는 회사 — 이해관계 미고지
총 스테이크 미공개 → 진짜 수익률 계산 불가

마지막 줄이 은근히 크다. 총 베팅액(turnover)이 공개되지 않아서 건당 수익률(yield)을 계산할 수 없다. 분모가 없는 수익률인 셈이다. 건별 데이터를 받으려던 엔드포인트는 빈 배열을 돌려줘서 감사 자체가 막혀 있었다.

내가 이 건에서 챙긴 것

이 실험이 무가치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재밌는 기획이고, 데이터를 API로 열어둔 건 오히려 성실한 쪽이다. 내가 검정을 돌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다.

문제는 전달 과정에서 표본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표본이 사라진 자리에 그럴듯한 인과 설명이 들어왔다. “윤리 때문에 소극적이어서 졌다”는 문장은 잘 읽히고 기억에 남는다. 검증하려면 원 데이터를 받아야 하는데, 대부분은 안 받는다.

나는 이걸 이렇게 정리해뒀다.

① 순위표를 보면 표본부터 찾는다. 없으면 순위를 아직 순위로 읽지 않는다. ② 순위를 만든 지표와 설명하려는 능력이 같은 것인지 본다. 여기선 ROI로 줄 세워놓고 예측력을 설명했는데, 둘의 상관이 0.179였다. ③ 인과 설명이 붙어 있으면 그 설명이 예측하는 다른 값을 확인한다. “소극적이었다”면 베팅 횟수가 적어야 한다. 240건으로 최다였다. 한 줄로 무너진다.

세 번째가 제일 쓸모 있었다. 인과 설명은 반드시 다른 데서도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없으면 설명이 아니라 이야기다.


참고

  • 원 데이터: 실험 사이트의 공개 API 엔드포인트(/api/leaderboard, /api/matches) 직접 조회, 2026-07-21 기준
  • 검정: 카이제곱 독립성 검정(승·패 교차표), Spearman 순위상관, 건당 손익 t검정(다중비교 Bonferroni 보정), 몬테카를로 20,000회
  • 기간: 2026-06-11 ~ 07-19, 104경기 / 1,376베팅 / 모델당 시드 10,000 USDC

⚠️ 이 글은 베팅을 권유하지 않는다. 원 사이트도 실험적 시뮬레이션이며 금융·베팅 조언이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글의 관심사는 베팅이 아니라 표본이 빠진 순위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다.

⚠️ 인과 설명(“윤리 제약 탓”)의 원 출처가 해외 매체 기자의 해석인지 실험 주체의 주장인지는 원 기사에 접근하지 못해 확정하지 못했다. 다만 그 설명이 공개 데이터와 배치된다는 점은 위 수치로 확인된 사실이다.